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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해결책을 찾는 법을 공부합니다

사회학 석사과정/대학원 생활

파이썬과 STATA 배우는 과정에서 생긴 온도차

study_data 2021. 8. 22. 23:07

대학원에서 질적연구방법론을 주도구로 활용하며 심층면담 기술을 공부했어요. 이론적으로 빠삭한 것도 중요하지만, 질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법론을 몸에 체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중 등장하는 질문은 인터뷰 대상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그 대화의 맥락을 짚어내면서 핵심줄기를 잃지 말아야 하죠. 이것들은 구글링할 수도 없고, 다른 이가 대신해 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질방 연구자는 그 자체로 자신이 훌륭한 연구도구가 되어야 해요. 이렇게 완성한 인터뷰는 여러 차례 가공을 거쳐서 대상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자르고 이어붙이며 나름의 편집을 해야 합니다. 숙련된 연구자가 아니면 인터뷰 중 대상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이제 막 터져나온 누군가의 말을 막아버리는 행동이 되기도 해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충분히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 이 작업이 논문으로서의 가치는 크게 가지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대부분의 질방 연구자들이 양적연구방법론(양방)을 섞어서 사용했어요. 석사과정이기 때문에 그 완성도가 높지 않고 사회학을 공부하다보면 분석툴 하나씩은 사용할 줄 알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죠. 자신의 결과물에 확신을 가지고 논문을 쓴다면 인터뷰만으로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글을 쓰지 않는데 소신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양방을 쓰지 않고 논문을 쓰는 일은 왜 어려운걸까

비슷한 맥락에서 저도 STATA공부를 시작했어요. 학부때 조금 배운 SPSS를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STATA를 마침 전공하신 교수님이 부임하셨고 수업을 수강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운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초적인 것인데 자료를 id별로 merge할 줄 몰라서 결국 손도 못대고 기말페이퍼를 개똥차반으로 발표했어요. 아주 기본적인 명령어인데 왜 이것조차도 떠올리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했을까 했는데, 그 수업 특유의 분위기와 STATA가 가지고 있는 페쇄성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SPSS도 분명 쉽지 않은 툴이지만, 도서관에만 가보더라도 실습책, 이론책이 굉장히 다양하게 나와있어서 설명이 잘 되어있었습니다. 아마 SPSS로 분석을 처음 배운 저에게는 어디를 클릭하고 뭘 눌러야 하는지 안내해주는 책이 더 편했던 것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코드만 잔뜩 쓰여있는 STATA책을 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STATA강의를 만들어야겠다

파이썬 책도 사실 실무책으로 넘어가면 코드만 흩날리는 페이지가 훨씬 많은데 그건 훨씬 더 매끄럽게 잘 읽히더라구요. 파이썬 기초 수업이 여기저기에 무료로 많이 열려있고, 영상으로 된 설명도 정말 많았어요. 접근하기가 훨씬 용이하고 질문할 수 있는 공동체도 가지고 있었죠. 데잇걸즈라는 좋은 공간에서 안전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고 직접 해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실력을 늘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든 이런 학문공동체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대학원 수업에서 만약 화면공유를 하고 서로 코드를 볼 수 있었다면, 저는 중도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다들 나와있는 그래프와 시각화자료만 들고 오는데, 전 merge조차 하지 못해서 아무 데이터도 들고 갈 수가 없었으니까요. 울면서 제가 들고 갔던 자료는 자료 평균값 막대그래프였어요. 그게 그릴 수 있는 최대였으니까요. 서로 결과만 쭉쭉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떤 코드로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이야기해봤다면 전 통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일을 하면서 먹고살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요즘은 들어요. 물론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역시 내가 잘하는 것은 글을 쓰고 사회학적인 분석을 하는 일이라는 확신도 듭니다. 그렇다고 데이터 사이언스 공부를 한 게 하등 쓸모없는 일은 아니에요. 저는 STATA에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고, 이제 논문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요. 그리고 merge도 할 줄 압니다..ㅋㅋㅋ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어디 외부에서 자료를 긁어다가 제 것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저는 데잇걸즈가 끝나고나면 논문심사를 준비해봐야겠어요. 잘하는 일에 제 기술을 덧붙여볼 생각입니다. 더욱 단단하게,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가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